
컴파스 13기 유지인 선교사
사슴의 동산 주차장에 무릎 꿇고 기도드렸던 그 밤이 아직도 기억난다. 오랫동안 내 마음이 너무 지쳐있던 상태였다. 당일 오후,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13기 선교사 훈련이 진행되고 있는 사슴의 동산에 방문하게 되었다. 훈련원장님과의 대화를 통해 마음에 해결된 것은 없었지만 갑작스런 제안을 받았다. 이미 시작된 13기 훈련이었지만 원장의 특권으로 합류해도 좋다는 말씀이었다. 예배를 드리고 있는 13기 선교사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때 나는 그들을 보며 내가 저들 가운데에 있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내 마음이 정해지기에는 불충분했다. 나는 여러 책임 중에서도 전도사로써 섬기던 교회의 영혼들을 이끌어야 하는 책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에 이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면 순종하고 싶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그 길이 내게 최고의 길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믿음이 부족했는지 나는 주차장에서 무릎 꿇고 이런 기도를 드렸다.
“제가 선교사로 결심하시를 원하시면 지금 이곳에 비를 내려주세요.” 지금 생각하면 참 웃음이 나는 기도다. 하지만 그 기도는 정말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드린 기도였다. 그리고 나는 비가 내리기를 기다렸다. 한참을 있었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어 일단 집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차에 올라탔다. 정문에서 500m 정도 나왔을 때, 바닥이 젖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사슴의 동산을 제외하고 비가 내렸다는 사실을. 하지만 내 마음이 더 요동쳤다는 사실을. 맞다. 나에게는 비가 내리냐 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응답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내 마음이 선교사로 결심하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는 마음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내가 그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도우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숨 가쁘게 달려왔던 지난날들과 내 마음에 있던 깊은 공허함, 그리고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갈급함을 아시고 예수님께서는 찾아오셨다. 훈련을 받기 시작할 때, 왜 이렇게 늦게 오셨냐고 예수님께 말하고는 했다. 근데 훈련을 받아갈수록 느낀다. 하나님의 방법과 때는 완전하고, 예수님께서는 걷지 않으시고 내게 달려오셨다는 사실을 말이다.
선교사 훈련을 받으며 좋았던 것을 나열하자면 너무 많다. 모든 상황을 설명하기엔 너무 길기 때문에 그 일들로 깨닫게 된 것들을 기록해보고자 한다. 첫째는,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도 그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성경의 모든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다양한 모든 상황 속에서 어쨌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이 와 닿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느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봤을 때, 확실하게 그렇다고 고백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내 삶의 모든 순간들을 돌아보면 비록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깨닫기 못했을지라도 내가 그 분 안에 거하기를 원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끝내 하루 만에 선교사로서 결심할 수 있었던 건 사랑이 아니고서야 설명하기가 어렵다. 비록 그 사랑이 온전하지 못한 사랑이었더라도 말이다. 이것을 깨닫고 너무 좋았다. 너무 감사했다. 이것을 깨닫고 나도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사랑하기를 원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둘째는,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됐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하게 된 것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창조하셨고, 그에 따라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다는 것이다. 나의 정체성과 내가 만들어진 목적, 내가 살아갈 이유, 그리고 어떤 사람으로서 살아가야 할지 알게 되니 삶이 뚜렷해지고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니 무엇을 하든 주님의 뜻이라면 할 수 있다는 기대와 기쁨과 감사가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나 된 것으로 하나님께 어떻게 영광 돌릴 수 있을지, 다른 사람이 아닌 오직 나에게 주신 은사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들이 보일 때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 참 감사하다. 하나님은 모두를 부르시지만 그 음성을 듣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을 사용하신다. 그 믿음을 갖게 되었다. 다양한 상황과 한계를 마주하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에 힘입어 승리하는 경험들이 나를 꼴 지어 나가고 있다. 내가 얼마나 부족하든, 내가 어떤 사람이든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신다.
셋째는, 중보기도의 힘을 깨닫게 된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내가 그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한 명의 영혼으로서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대하게 되는지 깨달을 수 있는 길이 된다. 그리고 나의 부족한 이 기도가 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깨닫게 되면 그 자체가 나에게 은혜가 된다.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경험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바라보게 되면 중보기도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 경험을 동료 선교사를 보면서, 훈련 가운데서, 훈련 밖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과 사람을 통해 경험할 수 있다.
넷째는, 그 어떤 것보다 진리가 나를 자유하게 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 예수님의 지상 사역 묵상을 통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머리로만 아는 예수님이 아니라 가슴으로 알게 되는 예수님을 느낄 수 있다. 말씀묵상과 기도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너무 기본적이고, 선교사들과 1년 동안 함께 살고, 사역하면서 실질적으로 깨닫게 된다. 나의 자아를 계속해서 높이고 싶어도 그 마음을 예수님께서 내려놓게 해주시고, 요즘은 예수님의 품성을 닮고 싶다는 생각이 참 많이 든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내 마음 속에 거하게 되는 것이 주께 영광이 될 뿐만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평안이 되고 행복이 되기 때문이다. 그 진리, 예수님이 나를 자유하게 한다. 이것이 죄를 용서받은 자가 믿음으로 얻게 되는 구원의 경험인 것이다. 주님 안에서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매일이 이제는 지치지 않고 기쁘다.
이 모든 것은 오직 기도와 말씀으로 가능해진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약속하셨고, 무엇을 깨닫게 하시는지 매일 아침 확인한다. 그리고 그 말씀이 내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일 수 있도록 기도로 성령님을 간구한다. 매일, 매순간 성령님의 음성을 들으며 그 음성에 순종하고자 하는 믿음을 연단해 나간다. 그리고 그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
살아계신 하나님. 사랑이신 하나님. 그 분이 통치하시는 나라에서 영원히 살기를 원한다. 그 나라를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내 마음 속에 잘 품고, 어둠 속 헤매는 자들에게 전하며 살고 싶다. 선교사로서 새롭게 태어난 앞으로의 내 삶을 온전히 주님 손에 맡겨드린다고 고백한다.
